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왜 금이 팔리는가 — 걸프 달러 페그의 구조적 취약점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왜 금이 팔리는가 — 걸프 달러 페그의 구조적 취약점
걸프 국가들의 금 매도가 시작됐다는 소문이 런던 시장에 돌고 있다. 공식 확인은 없지만, LBMA 볼트 데이터는 올해 첫 두 달 동안 45톤의 순유출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숫자는 터키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얄은 1달러당 3.75로 고정되어 있다. UAE 디르함도 고정이다. 카타르, 바레인, 오만도 마찬가지. 쿠웨이트는 바스켓 페그를 쓰지만 대부분 달러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유는 단 하나 — 석유를 팔아서 달러를 벌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이 그 전제를 무너뜨렸다.
달러 페그는 욕조와 같다
통화 페그의 핵심 메커니즘을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한 나라의 달러 보유고가 욕조라고 상상하자. 위에 수도꼭지가 있어서 달러가 흘러 들어온다. 아래에 배수구가 있어서 달러가 빠져나간다.
평상시 사우디아라비아는 매일 석유를 팔고 그 대가로 달러를 받는다. 수도꼭지에서 달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물론 달러도 나간다 — 식량 수입, 기계 구매, 무역 거래 등으로. 하지만 석유 수도꼭지가 워낙 세게 틀어져 있으니 욕조는 항상 넘칠 정도로 가득하다.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걸프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킬 수 있다. 누군가 디르함을 달러로 바꾸고 싶어하면 중앙은행이 욕조에서 달러를 꺼내 건네주면 된다. 욕조에 항상 달러가 넘치니까 문제가 없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수도꼭지가 잠긴다
이란 전쟁은 이 수도꼭지를 잠가버렸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걸프 국가들의 석유 수출이 급격히 줄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이 있어서 일부 수출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그런 대안이 없다.
수도꼭지에서 달러가 안 들어오는데, 배수구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빠진다.
식량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이 국가들은 여전히 먹어야 한다. 담수화 시설, 인프라 유지에 돈이 든다. 군사비는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자금 유출도 늘었다. 투자자들이 돈을 빼고, 기업들이 자금을 이전하고, 모두가 헤지에 나선다.
욕조가 비어가고 있다.
욕조가 비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달러 보유고가 바닥나면 통화 페그가 깨진다. 페그가 깨지면 해당 국가 통화의 가치가 폭락한다. 수입물가가 폭등하고,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걸프 국가들은 보조금 기반 연료, 무소득세, 높은 생활 수준으로 운영되는 사회다. 페그가 깨지면 이 사회 계약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이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체제 생존의 문제다.
중앙은행은 이 마진콜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선택지는 터키와 동일하다. 페그를 깨거나(불가능), 달러 보유고를 더 소진하거나(이미 감소 중), 금을 팔아 달러로 바꾸거나.
결국 세 번째다.
확인된 건 없지만 데이터는 말하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PIF), 카타르 투자청(QIA) 등 걸프 국가의 국부펀드들은 IMF에 금 보유량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 ETF, 선물 계약, 런던 계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고, 이를 조용히 처분할 수 있다.
내가 주목하는 건 런던 볼트 데이터다. 올해 들어 45톤의 순유출이 기록됐는데, 공식 매도 보고는 거의 없다. 볼트 데이터와 공식 내러티브가 맞지 않을 때, 그건 보통 누군가 조용히 매도하고 있다는 신호다.
TD 시큐리티즈의 상품 전략가도 같은 맥락의 분석을 내놨다. "이란 전쟁의 경제적 충격은 일부 중앙은행의 금 수요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다른 중앙은행들에게는 달러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 금을 매도하도록 강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금 투자자에게 의미하는 것
걸프 국가들의 잠재적 매도 규모는 터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사우디만 해도 공식 금 보유량이 323톤이며,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매도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면 — 그리고 데이터는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 금의 단기 하방 압력은 터키의 매도가 끝나더라도 해소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거나 유가가 의미 있게 하락하거나, 외교적 해결이 이뤄져야 이 구조적 매도 압력이 줄어든다.
단기적으로는 이 상황이 금에 역풍이다. 하지만 이 강제 매도는 구매자에게는 디스카운트된 가격에 금을 확보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마진콜은 다른 누군가의 매수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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