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움받는 주식을 살 때 필요한 다섯 가지 — 그리고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단 하나의 조건
가장 미움받는 주식을 살 때 필요한 다섯 가지 — 그리고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단 하나의 조건
똑똑한 사람들이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갈 때
어도비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제가 크게 존경하는 투자자들이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거든요.
유럽 최대급 펀드를 운용하는 테리 스미스는 어도비가 AI로 어떻게 돈을 벌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반면 빅쇼트의 마이클 버리는 어도비를 매수 포지션으로 들고 있습니다. 전통 있는 가치투자 펀드 오크마크는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를 사실상의 표준이라고 부릅니다. 모니시 파브라이는 어도비 같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이 AI 전환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며, 시장이 이들에 대해 아마 완전히 틀렸을 거라고 말합니다.
제 주변에도 어도비의 사업이 명백히 나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압니다. 성장률이 떨어졌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쪽 이야기만 골라 담습니다. 저는 그 대신 판단의 순서를 정해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미움받는 주식을 살 때 제가 통과시키는 다섯 가지입니다.
1. 양쪽 논리를 모두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
첫 번째 관문은 매수가 아니라 이해입니다.
제 기준은 이렇습니다. 반대편 논리를, 반대편 사람이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정확하게 다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도비의 경우 그건 세 문장입니다. AI가 완성품을 직접 만들어주면 도구의 가치는 사라진다. 지금 시작하는 세대는 어도비를 배우지 않고 자란다. AI 운영 비용은 폭증하는데 고객은 그 기능을 무료로 기대한다.
저는 이 세 문장 중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전부 실재하는 위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위험을 인정하는 것과 그 위험이 이미 실현됐다고 가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시장은 지금 후자에 가격을 매기고 있습니다.
2. 공포 스토리인가, 망가진 사업인가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실적을 보면 됩니다.
망가진 사업은 실적에 흔적이 남습니다. 매출이 꺾이고, 마진이 무너지고, 고객이 떠납니다. 공포 스토리는 주가에만 흔적이 남습니다.
어도비는 주가가 사상 최고가 대비 66% 빠지는 동안 분기마다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경신했습니다. 최근 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3% 증가했고, 연간 반복 매출은 270억 달러를 넘겼으며, AI 제품 매출은 12개월 만에 3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건 무너지는 회사가 아닙니다. 무너지는 회사처럼 가격이 매겨진 회사입니다. 그리고 그 간극이 정확히 기회가 사는 자리입니다.
물론 앞으로 실적이 꺾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스토리가 아니라 데이터가 바뀌는 것이고, 데이터가 바뀌면 판단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게 5번 항목입니다.
3. 대차대조표가 실수를 감당해주는가
큰 전환기에 죽는 건 틀린 회사가 아니라 버틸 돈이 없는 회사입니다.
블록버스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블록버스터가 스트리밍을 놓쳐서 죽었다고 기억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스트리밍 전환에서 꽤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무너뜨린 건 부채가 잔뜩 쌓인 재무제표가 금융위기와 만난 것입니다. 대차대조표가 버텨줬다면 오늘 밤 우리가 보는 화면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렌즈로 어도비를 보면 그림이 다릅니다. 시가총액 910억 달러, 기업가치 1,040억 달러, 차이인 130억 달러가 실질 부채입니다. 그런데 작년 잉여현금흐름이 103억 달러였습니다. 1년 조금 넘는 현금으로 부채 전체를 지울 수 있습니다.
이 여유가 무엇을 사주냐면 시간을 사줍니다. 어도비는 AI의 미래를 첫날에 맞힐 필요가 없습니다. 몇 번 틀려도 되고, 그 사이에 AI 연구에 계속 투자하고, Express 같은 무료 앱을 뿌려 신규 사용자를 끌어오고, Semrush 같은 회사를 인수하고, 싸진 자사주를 사들일 수 있습니다. 약한 회사는 변화기에 죽고 부자 회사는 적응합니다.
4. 안전마진은 내가 틀릴 확률에 매기는 값이다
제가 가장 자주 오해받는 지점이 이겁니다. 안전마진은 겁이 많아서 붙이는 게 아닙니다. 자기 판단의 오차 범위를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어도비에 제가 넣은 가정은 애널리스트 컨센서스보다 낮습니다. 매출 성장률 3·6·9%는 작년 실적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고, 잉여현금흐름 마진 37·40·43%는 지난 10년 평균 39% 언저리입니다. 그런데도 계산 결과는 400~890달러, 중간값 595달러가 나옵니다. 현재가는 227달러입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저는 낙관 시나리오가 맞아야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가장 비관적인 3% 성장 가정에서도 연 17.5%가 나오도록 가격이 이미 떨어져 있습니다. 약세론자들이 부분적으로 옳아도 제가 크게 다치지 않는 가격이라는 뜻입니다. 자세한 계산은 잉여현금흐름 9배의 어도비에 정리했습니다.
안전마진이 필요한 이유는 반대로 말하면 이겁니다. 곰들이 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대신 가격으로 대비하는 겁니다.
5.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조건을 미리 못 박아두기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항목입니다. 반증 조건이 없는 투자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신념입니다.
어도비에 대해 제 마음을 바꿀 조건은 명확합니다.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매출과 이익이 분명하고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하면, 그것도 한두 분기가 아니라 상당 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줄어들면, 그때 저는 AI가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힘이었다고 인정합니다.
이 조건을 미리 적어두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나중에는 절대 못 적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빠진 뒤에 반증 조건을 정하면 그건 이미 손실을 정당화하는 문장이 됩니다. 조건은 반드시 사기 전에 정해야 합니다.
하나의 종목이 아니라 서른 개의 종목
마지막으로 관점 하나를 남기고 싶습니다.
제가 어도비에 대해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제 주장은 훨씬 겸손합니다. 이런 성격의 회사를 서른 개 들고 있으면 결과가 꽤 괜찮을 것이다. 그게 전부입니다.
미움받는 종목을 사는 일은 원래 여러 번 틀립니다. 중요한 건 하나하나를 맞히는 게 아니라, 맞았을 때의 보상이 틀렸을 때의 손실보다 크도록 가격에서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90달러 근처의 마이크론처럼 아무도 손대지 않던 종목이 결국 크게 오르는 경우가 나오는 이유도, 그 하나를 맞혔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후보를 계속 걸러내는 과정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제가 17달러에 인텔을 샀을 때 모두가 비웃었던 기록은 내가 17달러 인텔을 샀을 때 모두가 비웃었다에, 저평가 후보를 찾는 스크리닝 방법은 시장이 사실상 공짜로 넘겨주는 주식을 찾는 법에 정리해뒀습니다.
투자에서 어려운 건 계산이 아니라 위장입니다. 모두가 겁먹었을 때 사는 일은 스프레드시트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고, 그래서 저는 위의 다섯 단계를 사기 전에 문서로 만들어둡니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미리 줄여두는 거죠.
지금 모두가 어도비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꺼이 탐욕스러운 쪽에 서 있습니다.
FAQ
Q: 존경하는 투자자들이 서로 반대편에 있으면 누구를 따라야 하나요? A: 아무도 따르지 않는 게 정답입니다. 각자의 논리를 재료로 쓰되, 결론은 자기 가정으로 계산해서 내야 합니다. 테리 스미스의 비용 우려와 파브라이의 선점 우위는 둘 다 검증 가능한 가설이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앞으로 몇 분기의 마진과 AI 매출 성장률이 답해줍니다.
Q: 성장률 둔화만으로는 매도 사유가 안 된다는 게 위험한 기준 아닌가요? A: 그래서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어둬야 합니다. 저는 매출과 이익이 상당 기간 일관되게 감소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애매하게 사업이 나빠지면 판다고 적어두면 결국 아무것도 팔지 않게 되거나 아무 때나 팔게 됩니다.
Q: 미움받는 종목만 골라 담는 게 역발상 투자인가요? A: 아닙니다. 싸다는 것과 미움받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미움받으면서도 현금흐름과 해자가 멀쩡한 회사를 골라야 합니다. 미움받을 만한 이유가 진짜인 회사도 세상에는 많고, 그런 종목은 계속 싸진 채로 사라집니다.
Q: 저는 서른 개 종목을 관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방식이 유효한가요? A: 종목 수보다 중요한 건 각 포지션이 하나의 가정에 목숨을 걸지 않는 구조인가입니다. 다섯 개만 들고 있더라도 각각의 반증 조건과 안전마진이 명확하다면 같은 원리가 작동합니다. 다만 개별 종목이 틀릴 확률은 그만큼 크게 다가오니 포지션 크기를 더 보수적으로 잡는 편이 낫습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글
메타, 실적 후 10% 급락: 매출 28% 성장과 잉여현금흐름 91% 증발 사이
메타, 실적 후 10% 급락: 매출 28% 성장과 잉여현금흐름 91% 증발 사이
메타의 분기 매출은 608억 달러로 28% 늘었지만 EPS는 6.18달러로 컨센서스 7.15달러를 밑돌았고, 잉여현금흐름은 1년 전 85억 달러에서 7억 8,400만 달러로 줄었습니다. 10년 가정으로 계산한 제 중간 적정가는 925달러입니다.
오라클 52주 신저가: 백로그 6,380억 달러와 마이너스 현금흐름,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
오라클 52주 신저가: 백로그 6,380억 달러와 마이너스 현금흐름,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
오라클은 계약 잔고 6,380억 달러(+363%)와 국방부 계약을 확보했지만 잉여현금흐름은 -230억 달러, S&P 신용등급은 BBB로 강등됐고 400억 달러 조달을 준비 중입니다. 제 10년 모델의 중간 적정가는 200달러입니다.
관심종목 65개를 세 층으로 갈랐다: 9%, 12%, 15% 기대수익률의 결정적 차이
관심종목 65개를 세 층으로 갈랐다: 9%, 12%, 15% 기대수익률의 결정적 차이
관심종목 65개 중 가격이 계산 범위에 들어온 37개를 기대수익률로 줄 세워보니 14개는 연 9~10%, 13개는 11~15%, 10개는 15% 이상이었습니다. 층을 가르는 건 기업의 품질이 아니라 오늘 붙어 있는 가격입니다.
다음 글
인텔 15년 만의 최고 성장, 그런데 왜 110억 달러 손실인가
인텔 15년 만의 최고 성장, 그런데 왜 110억 달러 손실인가
인텔 분기 매출 161억 달러(+25%)로 15년 만의 최고 성장률, 컨센서스 15억 달러 상회. 그런데 같은 분기 회계상 손실은 110억 달러였고 12% 급등은 하루 만에 사라졌습니다. 125억 달러 평가손실의 정체와 900억 달러가 증발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인텔 강세론 3가지 vs 약세론 3가지 — 파운드리 매출의 95%는 자기 자신에게 청구한 돈이었다
인텔 강세론 3가지 vs 약세론 3가지 — 파운드리 매출의 95%는 자기 자신에게 청구한 돈이었다
인텔 데이터센터·AI 매출은 59% 성장하고 전사 영업이익률은 17%로 돌아섰지만, 파운드리 60억 달러 매출 중 외부 고객 매출은 2억 9,000만 달러뿐이고 분기 적자는 20억 달러가 넘습니다. 강세론과 약세론을 각각 3개씩 세워 비교했습니다.
인텔 84달러는 싼가 — 26년이 걸린 신고가가 알려주는 것
인텔 84달러는 싼가 — 26년이 걸린 신고가가 알려주는 것
10년 가정(매출성장 5~11%, 마진 8~25%, 배수 13~23배, 요구수익률 9%)으로 돌린 인텔 적정가는 하단 15달러, 중간값 50달러, 상단 105달러였습니다. 애널리스트 낙관 전망을 그대로 써도 4년 뒤 주가는 80달러입니다. 지금은 83.76달러입니다.
이전 글
테슬라 영업이익률 1.4% — 기록적 매출 뒤에 숨은 진짜 숫자
테슬라 영업이익률 1.4% — 기록적 매출 뒤에 숨은 진짜 숫자
테슬라 분기 매출은 280억 달러(+26%)로 사상 최대였지만 영업이익은 57% 급감한 3억 9,800만 달러, 영업이익률은 1.4%까지 떨어졌습니다. 헤드라인 순이익 10억 달러의 대부분이 스페이스X 지분 평가이익이었다는 점을 포함해, 강세론 3가지와 약세론 3가지를 제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클라우드 82% 폭증에도 알파벳 주가가 7% 빠진 이유
클라우드 82% 폭증에도 알파벳 주가가 7% 빠진 이유
알파벳 분기 매출은 24% 늘어 1,200억 달러에 육박했고 클라우드는 82% 급증하며 이익이 3배 넘게 뛰었습니다. 그런데도 주가가 7% 빠진 이유는 두 가지 — 1,120억 달러 순이익 중 약 990억 달러가 일회성 평가이익이었고, 한 분기에 AI 자본지출로 450억 달러를 쓰며 사상 처음 현금을 태웠기 때문입니다.
순이익 1,120억 달러가 '착시'인 이유 — 평가이익이 실적을 왜곡하는 방식
순이익 1,120억 달러가 '착시'인 이유 — 평가이익이 실적을 왜곡하는 방식
같은 주에 발표된 알파벳의 1,120억 달러 순이익 중 약 990억 달러, 테슬라의 10억 달러 순이익 대부분이 팔지도 않은 지분의 평가이익이었습니다. 회계 규정이 왜 이런 착시를 만들고, 어떤 숫자를 대신 봐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